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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 별초 관람기.

Diary

by 루퍼셰르미 2005. 10. 2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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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별초’


꼭두별초란 안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삼별초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이것을 보게 된 경위는 모니터 요원으로 있는 친구의 초대 덕분이고, 본 직후에 쓰는게 가장 감동이 많이 남아있을거라 생각도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서도 생각날 정도고, 또 뭔가 걸리는 조금 있어 써보기로 했다.


시작부는 사공인 처랑의 가족이 배를 타고 가다가 홀돈의 배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대를 언제로 잡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몽고인의 배라..... 혹시 기억은 하시는지? 6차까지 있었던 여-몽 연합군. 이때 배를 어디서 만들었는지 기억을 하신다면 좋겠는데.... 몽골은 내륙지방이라 배를 만들줄 모르고 홀돈도 배 타는 법을 그리 잘 알았다고는 하기 힘든 몽골의 장수. 그런 홀돈의 배라는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한 여자를 납치하는 몽골 장수라.... 정동행성도 아니고 그때 그런 장수가 있었다는 기록은 정, 야사를 통틀어 찾기가 어려웠다. 몽골이 어째서 우리나라를 그렇게 오래 지배할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홀로 떠내려온 처랑은 놀패들에게 건져진다. 그러나 건져온 처랑을 데리고 다닐것이나 말것이냐를 두고 놀패 간에 말싸움이 벌어지지만 모갑이인 바우에 의해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결정 된다. 바우는 처랑의 말문을 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결국 처랑의 입을 열게 한 것은 근처를 지나가다 몽골 군사들에게서 놀패를 구해준 삼별초의 장수인 홍수장이었다.
홍수장은 삼별초 중 야별초의 수장으로 보인다. 처랑에게 검을 가르칠때 자신의 입으로 자신도 천민 출신이라 말을 했던 것을 보아, 농민이나 백정들을 모아 만들었던 야별초에 속해 실력을 키웠던 것이 아닐까. 삼별초의 항쟁도 말이 삼별초의 항쟁이었지 야별초의 항쟁이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고려의 민초들의 항쟁이었으니까.

홀로 검을 연습하는 처랑과 대조되게 나오는 놀패들의 놀판 장면. 마치 굿을 하는듯한 그 모습에 지금의 남사당패를 떠올릴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면에서 천연두를 발견할수 있었다. 제목에서 말한 꼭두란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를 뜻하는 꼭대기의 꼭과 머리를 뜻하는 두(頭 : 머리두)가 합쳐져 최고위치에 있는 것을 말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고, 천연두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꼭두 귀신이라고 하면 마마를 뜻하는 말이었다.
처랑이 검을 연습하는 장면이 나온것에 대해서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아직까지는 여자들의 행동을 제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랑도 검을 쥘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검을 구하기 위해 뭍에 올라온 처랑은 한 노인을 만나 검을 얻게 된다. 자기 자식처럼 생각한다는 그 검을 받아 검술을 다시 익히는 처랑과 그녀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홍수장. 그리고 그것을 보고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술독에 빠지는 바우. 그런 그들의 인연은 이상하게 꼬인듯 하나....

사실 이때 바우와 처랑이 듀오로 부른 곡은 아직도 귀에 쟁쟁한 듯 하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단지 서로의 소리에 맞춰서 그렇게 슬픈듯 하면서도 가슴에 사무치는 노래를 부를수 있었던 것, 그리고 처랑과 바우를 맡았던 배우들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잘 어울려 순간 눈물이 찔끔거릴뻔 했다.

술에 찌든 바우를 찾아온 처랑과 홍수장. 그들은 놀패에게 몽골에 대항하는 것에 도움을 청하러 오나, 놀패는 회의적이었다. 그때 처랑은 한가지 제안을 한다. 꼭두놀음을 하며 몽골군을 암살하자는 제안을. 그들은 검을 든다. 바우는 자신이 놀음을 하면서 쓰던 검을 들고 다른 놀패들은 검을 구한다. 아마도 별초들이 쓰던 검이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것들. 그래서 바우의 검만 조금 다르다. 조선시대의 망나니가 쓸법한 칼끝이 넓은 칼, 흔히 정글도라 불리울 타입의 이 검은 박수의 방울칼과 함께 놀패의 꼭두를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검을 익힌 놀패들은 별초들을 놀패로 가장하여 커다랗게 꼭두놀음을 하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마마귀신의 탈을 들고 놀음을 하며 그 사이에 암살을 하는 그들을 몽골군은 막지 못했을거라고 생각된다. 또한 놀패가 놀음을 하면서 몰래 자신들만의 손짓으로 우물물을 마시지 말라고 한 후, 몽골군만 우물물을 마시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은 우리 말을 모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몽골군과의 대전투 중 처랑이 죽고, 바우는 처랑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것으로 끝나는 듯 한데.... 도대체가 커튼콜이 아닌 일반 무대 인사인 바람에 헷갈려서.... 알수가 없었다.


꼭두 별초 뮤지컬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감동적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실망했던 부분은 뮤지컬이 아니라 극장의 실내 부분이었다.
장애인 석으로 마련된 곳, 휠체어 파킹 마크가 그려진 곳은 일반 휠체어가 아닌 전동식 휠체어 넓이를 생각한 듯 일반 휠체어 넓이보다 좁았다. 일반 휠체어라면 아마도 그려둔 선 위에 바퀴가 올라갈텐데, 그럼 그 사람들이 움직일때 손은 어찌해야 하는지? 또한 휠체어석까지 가는 길과 돌아야 할 부분은 무척이나 좁아서 움직이기 어려워보였다. 앞쪽 휠체어석으로 가는 문 바로 앞에는 프리시트로 보이는 좌석이 4개씩 양쪽에 설치되어 있었고, 뒤쪽 휠체어석 바로 뒤로 콘트롤 박스가 자리잡아 휠체어의 움직임을 막고 있었다. 과연 이게 장애인을 위해 만든 자리가 맞는지 궁금할 정도였으니 조금은 고쳤으면 한다.
또한, 보는 중에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다거나, 음식 냄새를 낸다거나, 쓰잘데기 없는 박수를 쳐 댄다거나-도대체 왜 무대 세팅을 바꿀때마다 박수를 쳐 대는건지....-기립박수때 브라보를 외친다거나-분명히 그 자리는 모니터 요원 석이라고 했었다.-하는 관람 매너는 조금 고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콘트롤 박스에서 공연 전에 방송으로 관람 매너를 조금 알려주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쉬는 시간 15분동안은 바깥의 매점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니. 매점은 1층의 간이 박스와 2층의 정식 박스. 두 개였는데, 사람수에 비해 너무 작았다고 생각된다. 토요일 4시 공연이라면 학생들은 식사도 하지 못하고 올 시간이며, 그 주변에는 식당가라던가 분식점 같은것이 없는데 어째서 매점은 그리 작게 만들었는지... 그것도 조금 시정을 했으면 싶다. 내 기억이 맞다면 중앙역 근처나, 고잔역 반대편으로 한참 걸어가야 식사할 곳이 있는데..... 걸어 가기는 조금 멀지 않을까? 아직까지 그 근처가 개발되지 않은것은 알지만 그정도 배려를 할수 있었다면 더 기분좋게 공연을 볼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2시간짜리 공연중의 15분 쉬는 시간을 그렇게 사람에 치여가며 요기를 하고 싶어 할지... 다른 시간대라면 조금 늦게 혹은 조금 일찍 요기를 할수 있었겠지만 4시라는 시간은 상당히 애매한 시간이지 않을까?



안산 문화 회관에서의 공연은 무척이나 아이디어도 좋고 내용도 좋았으나, 회관측의 준비 자세는 조금 모자랐다고 본다. 그러나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니 점차 나아질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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