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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종교에 대한 개인적 생각.

Diary/ETC

by 루퍼셰르미 2007. 7. 2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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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뉴스를 보며 든 생각을 정리해 본 글입니다. 말투의 딱딱함을 이해해 주시길.

저는 우리 공군 조종사 사망 사건에 비해 이따위 피랍 사건 하나가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 분들의 영결식은 5분도 안되는 방송으로 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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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신자들은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교회를 다니는가?" 를 물어본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당연한 듯 "교회에 다니면 구원을 얻을수 있다."라고 한다. 그들의 맹목적인 믿음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들에게 있어 교회는 삶 그 자체로 보인다. 열심히 믿는것도 좋다. 봉사하겠다는 생각도 좋다. 그런데 왜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가.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약 7년 전, 대학교 1학년때의 일이다.
그때만해도 본인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개신교 혐오증도 없었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 당시 우연히 친해진 남학생이 있었다. 일본어 교양 수업 시간에 자신이 '신학과 학생'이라며 교양 책을 가져 오지 않아 같이 볼수 없겠냐고 물어본, 그래서 책을 같이 보다가 알게 된 학생이었는데, 어느날인가 내게 "너 교회다녀?" 라고 묻는 것이었다. "아니. 왜?" 라고 대답하자 "아. 입학할때 한학기에 10명씩 전도하겠다고 했는데."
순간 황당했다. 당시 내 손에는 묵주-5단짜리 길다란것-가 들려있었다. 그래서 묵주를 보여주며 "나 성당 다녀" 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의 반응은 마치 잘됐다는 듯, "교회로 옮길 생각 없어? 좋은 교회도 알고 있고, 소개 해 줄수도 있어."
당시의 나는 참 얌전했던듯 하다. 지금이라면 당장 죽일듯 달려들어 한소리 했을테지만 그때는 아무말 없이 5초를 보내고 난 후 "싫어."라는 한마디로 끝맺은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이후에도 그 남학생은 포기하지 않고, "왜 성당은 마리아를 믿나?", "왜 성당은 고해성사를 하는가?", "왜 성당은 제사를 허용하는가?" 등의 쓸데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결국은 같은 신학과 학생에게 핀잔을 듣고 끝났지만서도, 이 사건에서 나는 개신교 신자들의 오만한 구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종교는 오직 [개신교] 뿐이다. 제발 그들만을 가리켜 [기독교]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독이라는 단어는 Christ의 한자 표기일 뿐이다.

그들의 오만함은 자신들만을 '기독교'라고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한도없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근래의 예가 바로 이명박씨의 서울 봉헌 사건이다. 서울시 천만 인구가 모두 개신교 신자인 것도 아니거니와, 서울시가 이명박씨 개인 소유의 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버젓이 "서울을 봉헌한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런 오만하고도 방자한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벌어진 후, 돌아다녀본 블로그들에서 매우 예전의 동영상 몇개를 발견할수 있었다. "사찰이 무너지게 하소서"라는 제목이었다. 이는 교회를 제외한 다른 종교는 인정할수 없다는 논리의 일부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절에서 "교회가 무너지게 해 주시기를"이라는 내용의 예불을 드리면 어떤 반응을 할까? 아마도 사탄의 앞잡이 운운하면서 불교계를 욕하고 다니지 않을지. 예상해 볼수 있다.

대한민국의 개신교는 자신들이 어떻게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자리잡을수 있었는지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유가사상이 만연한 조선시대, 개신교처럼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가 쉬이 살아남을수 있었을까.
답은 '아니오'이다. 카톨릭이 먼저 들어와 수많은 순교자를 내어 자리 잡고, 유일신 사상에 대해 이해시키고 확립시킨 후에야 들어온 것이 개신교이다. 그렇다고 카톨릭의 우월성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개신교 신자들은 자신들의 종교 역사에 무지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을 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무엇이 개신교 신자들의 맹목적 믿음의 근원인가? 를 따져보기로 하자.
「그들은 성서 공부를 한다.」
그렇다고 카톨릭이 성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불교가 불경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성서 공부는 도가 지나칠 따름이다. 개신교의 성경은 카톨릭의 성서처럼 쉽게 적혀있지 않다. 1900년대 초기에나 쓸법한 한글로 적혀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겟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약대] 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는가? 그냥 보기에는 전혀 알수 없다. 알수 있다면 당신은 개신교 신자거나, 관련 학교에서 공부를 하셨거나, 고문(古文)을 공부하신 분이다.
이 단어는 낙타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현대 국어의 구어체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개신교 성경에나 등장하는 단어인 것이다.
이런 성경을 현대 국어로 재번역하는 것이 개신교의 가장 기본적인 성서 공부란다.
그러니 그들의 말대로 하면 믿음이 강해질수 밖에 없다. 이 공부를 위해 주말 내내 교회에 있으니까.

「교회는 다문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제 이번 사태를 짚고 넘어가보자. 인터넷에 만연해있는 샘물교회 모 신자의 미니 홈피 사진과 그 설명글이 가히 가관이다.
[사진 보기 1 / 2 / 3 ]
모스크의 소리 울림이 좋다는 안내인의 자랑 섞인 설명에 노래 한곡을 녹음해도 좋겠느냐. 라고 물었단다. 분명 노래 한곡. 이다. 기분이 좋아진 안내인이 OK를 해 주자 찬양을 했단다. 단어만 봐서는 찬양도 노래 한곡이 맞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난 안내인의 인내력에 경의를 표한다. 모스크라 하는 것은 이슬람 사원이다. 그 안에서 '찬양'을 했다 하는 것은 무슬림들이 교회 안에서 꾸란 암송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자기네 종교 무시당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면서 다른 종교는 무시한다. 이런 사고 방식이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가족이야 애가 타겠지만, 국가에서 말렸음에도-당시 아랍 지역은 제 3 경보 지역, 출국 제한 구역이었다.-그들은 갔다. 선교가 아닌 봉사라며, 그들은 그 전쟁터로 웃으면서 갔다.
그런 그들을 구하기 위해, 피같은 세금을 써야 한단다. 교회측에서는 10원 한장 내 놓지 않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그들을 구해야 한단다.
그 부모, 그 가족도 세금을 냈으니 상관없느냐? 라고 하실 분들이 보인다. 지금 추정 예산만 33억 정도란다. 그 33억을 그 가족이 다 낸것이 아닌 이상, 그런 반박은 무의미해진다.

2007. 07.22.20:30
이 시간이 무슨 시간인지 아시는 분 있는가. 이 시간은 서울역에서 그들의 무사 생환을 위하여 촛불집회가 열린 시간이다. 그리고 그들의 피랍 소식에, 우리의 국군 장병이 사고를 당한 뉴스는 묻혀버렸다. 지금, 23일 9시 뉴스에., 영결식 장면 잠시 나오고 말았다.


나는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야간 훈련에 임한 군인 두 사람의 목숨과,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국가의 만류도 뿌리치고 전쟁 지역으로 간 저 23인의 목숨 중, 어느 쪽을 더 무겁게 생각할 것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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